한국 LGBTI 인권현황 2013년


집단괴롭힘으로 인한 자살, 학교 측의 책임이 없다는 법원의 판결

 

집단괴롭힘으로 인한 성소수자 학생의 자살에 대해 학교 측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내려졌다.(대법원 2013.7.26. 선고 2013203215 판결)이 판결은 학교 내 집단괴롭힘이 심각한 오늘날, 보호감독의 책임을 강화해야할 학교를 오히려 면책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할만한 선례를 남겼다.

 

2009년 당시 고등학교 1학년 학생 A군은 가는 목소리와 여성스러운 행동이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같은 반 학생들로부터 집단따돌림 및 정신적·신체적 괴롭힘을 당해왔다. 학교에서 실시한 우울척도검사 결과 A군은 우울 상태와 자살 충동이 심각한 수준이었고, 담임교사는 A군이 집단괴롭힘을 당하고 있던 사실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살을 암시하는 A군의 메모 역시 확인한 바 있었다. 그러나 담임교사는 A군의 부모에게 전학을 권하는 것 외에 특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러한 괴롭힘과 교사의 방관이 지속되는 도중 200911, A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 원심법원은 담임교사가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아 피해학생의 자살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교사의 사용자인 부산시청에 손해배상의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부산고등법원 2013.2.28. 선고 201250445 판결) 그러나 이에 대한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자살에 대하여 학교 책임을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부산고등법원에 이 사건을 환송했다.

 

파기환송 이유는 1) 괴롭힘의 정도가 빈번하지는 않았고 주로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조롱이나 비난 정도였던 점을 볼 때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없는 악질, 중대한 집단 괴롭힘이라고 보기 어렵고 2) 사고 무렵 자살을 예상할 만한 특이한 행동을 한 적이 없으며 3) 담임교사에게 망인의 자살에 대한 예견가능성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파기환송심법원은 20142, 대법원 판결취지대로 학교 측의 피해학생의 자살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하였고, 다만 피해학생이 집단괴롭힘을 당한 사실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였다. 부산고등법원 2014.2.12. 선고 201351414 판결; 확정).

 

이 같은 판결은 물리적 폭력이 수반되지 않은 괴롭힘이라 할지라도 피해자는 반복되는 일상적 공격으로 인해 고립, 위축, 불안과 같은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처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라고 평가된다. 또한 우울과 자살의 징후를 명백히 알고 있었음에도 학교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 대해 면죄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제기되었다.(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청소년 성소수자를 자살로 몰고 간 집단폭력에 대해 학교 책임을 부정한 대법원 판결에 관한 논평, 2013. 8. 12.)

 

동성애혐오성 괴롭힘(homophobia bullying)에 대한 인식이 부재한 것도 문제이다. 학교에는 성소수자 청소년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창구가 미비하기 때문에, 이러한 괴롭힘을 구제하지 못할 경우 자해, 자살 등 치명적인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특히 남성청소년에 대한 집단괴롭힘의 상당수가 전형적 남성성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구실로 성적 모욕을 수반하는 동성애혐오성 괴롭힘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성소수자 청소년뿐만 아니라 학교폭력 및 집단괴롭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성애혐오성 괴롭힘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학교 당국의 보호·지원의 책임을 시급히 강화할 필요가 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모두에게 안전한 학교를 위한 유네스코 가이드북번역 발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성소수자학생인권실행팀 이반스쿨의 번역으로 모두에게 안전한 학교를 위한 유네스코 가이드북- 동성애혐오성 괴롭힘 없는 학교를 발간(2013.10)하였다. 이 책은 2012년 유네스코가 발간한 ‘Education Sector Responses to Homophobic Bullying’ 을 번역한 것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 책을 교사, 행정가, 정책입안자, 학부모, 학생, 시민단체, 그리고 교육에 몸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고 전하며, 처음으로 한국 교육 현장의 동성애 혐오를 언급하였다. “저의 모국, 대한민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동성애는 대개 금기시되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관용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국가 기관이 오히려 문제의 한 부분이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고 지적하며 LGBT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안전하고 평등하게 보호와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반기문 동성애 혐오, 지독한 인권 침해한국 첫 언급, <프레시안> 2013.5. 1. )

 

 

학생인권조례 제정·정착에 대한 끊임없는 제동

 

교육부와 지방교육청 등 교육관련 국가기관들이 시도별로 제정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 청소년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에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20137월 전라북도의회에서 제정된 전북학생인권조례에서는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차별금지사유의 하나로 포함시켰는데, 당시 이 조례안에서 소수 학생으로서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조항에 대하여 교육부는 전라북도의회에 아래와 같이 반대의견을 표명하였고, 조례가 제정되자 이에 대한 무효소송을 제기하였다.

 

성 소수자 부문은 성에 대한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청소년에게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음” (교육부, 전라북도 학생인권 조례() 입법예고에 대한 의견, 38조 관련)

 

위와 같이 성소수자의 권리보장이 청소년에게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그 자체로 매우 차별적인 교육부의 의견은, 20121월 서울시의회에서 제정, 공포되었던 서울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반대의견으로도 똑같이 제시된 것이었다.(서울 학생인권조례재의 요구...반발, <YTN>, 2012. 1. 9.. 교육부는 성소수자 권리보장에 대한 반대 등을 이유로 서울시의회에 재의를 요구했었고,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대법원에 조례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한 바 있었다. 이 사건은 201311월 각하됨으로써 종결되었다.(대법원 서울학생인권조례무효청구 각하, <세계일보> 2013. 11. 28.)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이후, 서울학생인권조례에서 성소수자의 차별금지와 권리보장 부분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문용린 교육감이 201212월 취임하게 되었다.(새 서울시교육감 문용린서울교육어떻게, <파이낸셜뉴스>, 2012. 12. 19.) 문용린 교육감은 결국 20131230, 조례의 개정안을 마련하여 의회에 제출하였는데,(서울학생인권조례 개정안 입법예고 교사 생활지도권 강화, <아시아경제> 2013. 12. 30.) 차별받지 않을 권리 조항에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라는 조문을 삭제하고 개인 성향이라는 의미가 불명확한 말로 바꾸도록 하였다.(20144월 현재, 이 개정안은 서울시의회에 회부된 상태이다.(교육감, 서울특별시 학생인권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2013.2.7. 의안번호08-01706)

 

유사하게 2013년 강원도의회의 강원도 학교 구성원의 인권에 관한 조례’(강원학교인권조례)(강원도교육청 공고 제 2013 -10강원도 학교 구성원의 인권에 관한 조례안 입법예고’)의 제정 시도 과정에서도, 강원도교육청이 원안에 포함되어 있었던 동성애자 학생의 학습권 보호에 관한 내용을 결국 삭제하는 일이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하여 반대하는 보수기독교단체의 의견을 받아들인 결과였다. 이 조례안은 서울학생인권조례의 법적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결국 도의회에서 통과를 보류하기로 결정하였다.(강원 학교인권조례 제정 일단 제동, <한국일보>, 2013. 3. 17.)